현대 서구 문명에서, 더 나아가 현대 세계 전반에서 가장 기본적이고 자명한 것 중 하나가 있다면, 우리가 ‘진실’이라고 믿는 것은 우리가 목격하는 것의 결과라는 공리적 전제야. 이게 바로 과학적 방법 전체의 토대고, 이른바 경험주의라고 불리는 거지. 물리적 세계에 대한 데이터와 증거를 모으고, 그걸 바탕으로 현실에 대한 이론을 세워.
그런데 사실은 반대라면 어떨까? 물리적 현실이야말로 우리의 가정과 믿음의 결과라면? 요즘 학계 논의에서도 의식이 뇌의 신경 활동에서 ‘생겨나는’ 어떤 성질이 아니라, 모든 것의 실제 기반이라는 이야기가 점점 더 많이 나와. 그렇다면 출발점이 의식인 거고, 우리가 현실이라고 여기는 것에 대해 마음속에서 구성해낸 것들이, 바로 그 의식 속에서 먼저 그렇게 만들어졌기 때문에 실제로 그 현실로 드러나는 경향이 있어.
점성술로 오면, 바로 여기서 점성 지도, 트랜싯 등으로 표현되는 원형적 에너지, 혹은 상징들이 실제로 구체적으로 드러나는 방식이 생겨나.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의 핵심 역학은 이런 상징들로 표현되지만, 그것이 실제로 어떻게 나타날지는 각 개인이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구성하는 몫이야. 행성, 각(애스펙트) 같은 것들은 구체적인 물리적 발현을 ‘결정’하지 않아. 다만 전반적인 가능 방향을 가리킬 뿐이고, 사람마다 경험 방식도 달라. 그래도 그 모든 경험은 그 상징들이 대표하는 범위 안에 있는데, 그 범위는 꽤 넓을 수 있어.
출생 차트에 표현된 점성술적 역학과, 그에 따른 별자리 변화의 전개를 ‘배워야 할 교훈’과 ‘그 교훈을 배우기 위해 거쳐야 할 경험’으로 본다면, 이걸 ‘무엇(WHAT)’이라고 부를 수 있어. 반면 이런 역학과 경험이 실제로 물리적으로 어떻게 드러나는지는 ‘어떻게(HOW)’라고 부를 수 있고. 그래서 ‘무엇’은 어느 정도 미리 정해져 있고 운명적이라고 볼 수 있는 반면, ‘어떻게’는 개인이 의식적(또는 무의식적)으로 선택해 드러내는 것에 달려 있어.
여기서는 Bashar의 가르침을 조금 되풀이하고 있어. 그가 지구에서의 인간 존재의 의미와 목적을 이야기할 때, 그는 태어나기 전, 즉 주어진 생애(혹은 환생) 이전에 영혼이 그 생에서 경험하기로 선택한 ‘지구의 물리적 현실에서의 교훈’이라는 관점으로 말하거든. 이런 것들이 점성술의 ‘무엇(WHAT)’일 수 있어. 또 그는 우리가 경험하는 물리적 현실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실재’하지 않고, 사실은 의식의 투사라고 설명해. 이건 의식이 모든 것의 실제 기반이라는 앞의 주장과도 맞닿아 있지. 이 주장은 점성술의 ‘어떻게(HOW)’와 연결돼. 즉, 이 삶에서 어떤 경험과 교훈을 거쳐야 한다는 큰 틀은 출생 시의 점성 지도/태어나기 전의 영혼에 의해 마련되어 있지만, 지구의 물리적 현실에서 그것들을 실제로 어떻게 경험해 나가는지, 그리고 그것이 물리적으로 어떻게 발현되는지는 의식적 또는 무의식적 선택과 해석(즉, Bashar가 말하는 ‘믿음’)의 산물이야.
여기서 흥미로운 함의가 나와. 하나는 우리의 삶이 미리 정해져 있으면서도 동시에 자유의지도 상당히 크다는 거야. 미리 정해진 점성술의 ‘무엇(WHAT)’과, ‘어떻게(HOW)’에 대한 우리의 자유의지가 결합된 거지. 아마 더 많은 함의가 있겠지…

